본문 바로가기

일상/일기

사소한 기억들.


 가끔 어떤 동네의 구석구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8살때쯤까지 살던 '전화국 뒤' 동네가 그런 곳 중 하나다. 멍하니 누워 있을 때나 혹은 밥 먹다가, 책을 보다가도 가끔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어쩐지 가슴이 아프다. 사실, 지금 사는 집에서 걸어서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라 버스를 타면 금방이라도 갈 수 있어서 좀 우습긴 하지만.
 이사를 온 뒤 그 동네를 세 번인가 가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어딘지 달라서 낯설었다. 너무 좁고 허름해 보이는 골목,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을 이웃집, 그리고 우리 집... 집 앞에 서서 저 쪽 골목 끝에 보이는 아빠 차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멀리서도 아빠 차 넘버 '1804'를 알아보는 나를 이웃집 아주머니가 눈이 좋다며 쓰다듬어 주셨다.
 오촌 친척에게 전세를 얻어 살았던 우리 집은, 꽤 작았지만 여동생과 함께 뛰고 구르며 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땐 내가 작아서 그렇게 느꼈던 걸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는 겁이 더 많아서 늘 엄마 아빠와 같이 잤는데, 6~7살 때쯤에 엄마가 "너 언제쯤 혼자 잘래?"라고 해서 "다음주 화요일쯤."이라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 날이 금요일 쯤이었는데 다음주 화요일 정도면 꽤 먼 미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거였다. 하지만 화요일은 곧 찾아왔고 엄마는 정말 그날부터 나를 옆 방에 혼자 재웠다 ㅠㅠ
 국민학교 1학년 때 학교 앞산으로 야외학습? 같은 걸 간 적이 있다. 커다란 바위에 얼룩이 져있는 걸 보고 아이들이 옛날에 어떤 남자가 저기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어서 생긴 핏자국이라고 했다. 그 날 난 잠을 자지 못했다 ㅠㅠ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불을 못 끄고 계속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뒤척였다가 괜히 안방을 들여다보다가. 엄마는 대체 왜 그러고 있냐며 빨리 자라고 날 나무랐다. 밤 12시쯤 되어 늦게 집에 들어 온 아빠는 엄마처럼 나를 혼내지 않고, 뭐가 무서웠냐며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내가 잠들 때까지 아빠가 불을 끄지 않은 덕분에 결국 그 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수두에 걸려서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집안에서 혼자 놀았던 기억도 난다. 엄마는 내가 심심할까봐, 오려 붙이고 놀라며 색종이랑 스케치북을 줬는데 나는 바보같이 네모난 색종이에 통째로 풀칠해서 스케치북에 붙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적감각은 ㅎㅎ 또 어느 날은 친구 두 명에게 내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쳐서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엄마는 당황했지만 일단 애들한테 밥을 차려주고 후식으로 부라보콘도 사줬다. 그리고 애들이 돌아간 다음 난 오지게 혼났다 ㅠㅠ 그 때 왜 그랬는지는 미스테리지만 추측을 해보자면 뭔가 나도 생일파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생일을 지어내는 건 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집에서 살던 8살쯤까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같다.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건지 알지도 못 했고 알 필요도 없었던 때, 그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나름 부족한 것 없이 살았던 때 같아서. 하긴, 어디서 봤더라.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앞으로 알게 될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라는 말.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추억하는 건 단지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내가 그 때를 무의식중에 미화시켜서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뭔가 아련하게 남겨둘 수 있는 추억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일상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23  (0) 2008.11.23
1114  (0) 2008.11.14
1113  (0) 200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