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일요일. 아침 8시 40분쯤에 알람을 맞춰두었다. 새벽에 한두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기 때문에 금방 눈을 뜨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반찬은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과 김치볶음. 8시 50분쯤 벌떡 일어나서 눈꼽을 떼고 안경을 끼고 머리를 묶고 거울을 한 번 보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주메뉴는 곰탕이었는데 아침부터 뽀얀 국물을 떠먹고 있자니 약간 거북했다. 밥을 다 먹고 방으로 돌아오기까지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바로 눕기엔 내 몸에게 염치가 없는 것 같아 대략 40-50분간 컴을 하며 소화시키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 침대에 누웠다. 2시간 정도 더 잤다. 그러고는 배앓이를 실컷 했다.
어젯밤엔 오랜만에 '가족의 탄생'을 봤다. 벌써 다섯번도 넘게 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울었다. 아닌가? 전에도 울었나? 암튼 공효진이 맡은 선경 역할에 왜 그렇게 마음이 가던지. 엄마가 청승 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어 일부러 싸움 걸고 상처주는 말만 골라하고. 집에 찾아 온 남자친구와 '너 나한테 왜 그래?', '너는 나한테 왜 그러는데?'.. 서로 끝없는 질문만 던지다 끝내 돌아서고. '잘 가세요, 개새끼들아.' 라며 누구에게인지 모를 욕을 내뱉고... 그렇게 남들을 할퀴고 상처낸 대가는 결국 자기가 다 치룰 걸 알면서도 반복한다. 나중에 그렇게 후회하며 가슴 쥐어 뜯을 거면서... 나도 선경이처럼 나중에 가슴 쥐어 뜯을 일을 매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던건가 싶다.
갑작스레, 과외를 관두겠으니 돈을 도로 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어이없게도 한 시간 내내 엉엉 울었다. 내 꼴이 너무 짜증나서. 일단, 불만은 많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가르쳤는데 일방적으로 '짤렸다'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했고, 몇 시간 전만 해도 오늘 보충하러 와달라더니 갑자기 문자로 딸랑 통보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애하고는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그냥 뭐 이렇게. (사실 샤넬 지갑 자랑하던 그따위 개초딩과 마지막 인사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기계의 부속품 취급을 당한 기분이다. 게다가 며칠전에 과외비를 받고는 동생에게 갚을 돈과 한 달 간의 식비 배분, 데이트 비용까지 예산을 다 짜놨는데.. 이번에는 돈 생기자마자 홀랑 다 쓰지 않고 그나마 아껴뒀지만 그래도 4만원이 비어서 그걸 도로 채워서 보내야 한다. 그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당장 종강하기 전까진 어떻게 살지? 과외 하다가 맘에 안 들면 그만둘 수도 있는 것이고 수업 안 한 부분에 대해선 돌려달라고 하는 것도 당연한거니 내가 뭐 탓할 수도 없다. 문자로 통보한 건 자기도 곤란해서 그런 걸테니 기분 나빠도 욕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다만 내가 짜증나는 건 다른 사람이 그렇게 쉽게 내린 결정에 내 생활이 흔들리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비참했다는 거다. 내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더 많겠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이해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Anger is my meat.'라고 했던가. 우울할 때면 나는 늘 내가 만들어 낸 세상에 빠진다. 그리고 가끔은, 다시는 거기서 나오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