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넹)
돈이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지를 말하자면 끝이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분명 난 죽을 때까지 우리 엄마처럼 돈, 돈 하면서 살겠지.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는거다.
오늘도 어찌어찌 열변을 토하며 한시간 반을 가르치고 나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하루 중 내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바로 얘가 아닌가,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하루에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의사소통의 총량이라고 하면... 기숙사 식당에서 배식해주는 아주머니에게 '안녕하세요.',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에게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마주치는 동기들과 아주 짧은 인사, 가끔씩 수업시간에 의견을 말하거나 질문하는 정도? 그리고 저녁에 룸메와 '안녕', 혹은 '왔어?'... 그 외엔 화, 목요일에 과외 가서 수업 중간중간 잡담하는 정도...? 으악. 대화를 하고 싶다. '말' 말고, 대화를... 꼭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상대를 필요로 하며 외로워 하는 모습 같다. 난 아직 23살인데. 어쩌다 일상이 이렇게 무미건조해졌니.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전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길 맞은편에 있는 고등학교 교문 앞에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더라. 그러고보니 오늘이 수능이었구나. (어제인줄 알았음; 오늘 하루가 어쩐지 이틀 같이 느껴졌다.) 내가 수능을 본 게 벌써(아직?) 4년 전. 수능을 보고 나서 블로그에 장~문의 일기를 썼는데 실수로 날려먹어서, 다시 안 썼는데 참 후회된다. 좀 남겨놓을걸. 벌써 이렇게 가물가물해질줄 알았으면 말야. 그 날은 정말 추웠다. 아마 까만 스타킹 대신 레깅스(쫄바지?)를 입고, 교복 위에는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하고 장갑도 끼고, 완전 무장한 상태로 갔던 것 같다. 평소에 늘 끼고 다니던 방석과 쿠션, 무릎담요도 함께. 엄마의 쪼그만 금색(똥색?)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가파른 경사는 엄마의 운전실력으론 어찌할 수 없어서 교문 저~ 아래 세워줬더랬지. 좀 일찍 간 탓에 교실에는 아이들이 몇 명 없었다. 평소 쓰던 샤프와, 늘 나와 일심동체였던 아이리버 iFP-780. 엄마한테 영어듣기 공부할거라고 반구라를 쳐서 고3 초에 샀던 128메가짜리. 다음 해 봄에 790을 새로 사면서 동생에게 줬는데, 그 후로도 몇 년을 용케 버텨서 좀 신기했다. 고3 때 이 엠피쓰리와 구닥다리 씨디플레이어로 듣던 노래들을 지금 다시 들으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수능 날은 평소 수학공부할 때 자주 듣던 원타임의 'Nasty'를 계속 들었던 것 같다. 한 곡 반복해놓고 하루에 수십번씩... 뭐 딱히 다른 이유가 있었다기 보단 시끄럽고 정신없는 음악을 들으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느낌이 들어좋고, 특히나 수학 공부를 할 때 들으면 문제를 보는 내 복잡한 심경과 일치됨을 느끼며.. #%#$%$$%&... 이런 시끄러운 음악도 계속 들으면서 공부에 집중하다보면 나중에는 거의 안 들리게 되는데, 그 때의 기분이 뭔가 캬-!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서는 인터넷에 뜬 수리영역 정답을 보며 이건 맞췄네, 틀렸네 하면서 정신 나간 짓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ㅋㅋ 수능은 생각만큼 떨리지도 않았고, 허무하게도 정말 '별 것' 아니었다. 나는 수능을 치고 나면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모의수능 때보다 차분하게 마지막 제2외국어까지 마쳤다. 수험표 뒤에 붙인 정답체크 스티커에 열심히 내 답안을 옮겨적고. 내 친구들은 거의 다 제2외국어를 안 봐서 다른 학교에서 시험을 봤더랬지. 덜 친한? 몇 명 아이들과 교문을 나서는데 김모선생님께서 서 계셔서 참 반가웠다. 근데 나 왜 수능 치고나서 친구들이랑 안 놀았지? 지금 생각하면 뭔가 엄청 먹고 (마시고) 놀았어야 되는건데... 곧장 집으로 가서 인터넷에 뜬 답을 보고 가채점을 샤사삭. 수리 점수가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고 다시 채점하고. 엄마에게 달려가 이야기 하고 김모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랬지. 그리고 다음 날부터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뭔가 불안한 듯? 하면서 그나마 고등학교 입학 후 가장 편한 마음으로 실컷 놀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뭔가 그립기는 하지만 막상 돌아가라면 그건 싫겠지?! 그래도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아니더라도 가장 재밌었던 시절 쯤은 될 것 같다. 뭐 이건 누구나 그렇겠지- 암튼 오늘 수능 본 다수의 90년생 & 빠른 91년생 아이들과 재수 삼수 그 외 장수생들도 수고 많으셨음.
KMP '랜덤재생'을 걸어놨는데 현경과 영애의 '그리워라'가 나온다. '별빛속으로'가 다시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지은이랑 시사회로 볼 때도 좋았지만 드림시네마가 워낙 쉣구린데다 그 산만한 분위기. 거기다 앞쪽 구석탱이 자리 ㅠㅠ 한 달 뒤쯤 압폰지(ㅋㅋ)에서 혼자 봤었는데 아. 그 때의 느낌은 정말. 황홀황홀황홀. 2411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정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DVD 갖고싶다 으으으으으. 마~이 좋아하는 영화들 DVD로 꼭 다 소장해야지, 하면서도 정작 갖고 있는 건 별로 없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모아야지 호호.
어쩌다 보니 한 교수님의 수업을 두 개 듣고 있는데, 수업시간에 의외로 마음에 쏙쏙 박히고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들어서 좋다. 여자만 점수를 잘 준다고 말하는 선배들도 있지만 사실 난 그건 잘 모르겠고; (2년전에 들었을 때 내 점수가 구렸던 탓에...) 교수님이 하는 말씀을 들으면 뭔가... 가치관이나 세상을 보는 비판적인 안목이 참 배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더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 또 과제가 꽤 빡세기는 하지만 정말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쓰잘데기 없이 노가다만 시키고 남는 거 없는 수업이 너무 많아서, 이번엔 괜찮은 수업을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뭐든. 내 손에 닿는 건 다 제대로 해내고 싶다. (...이제부터라도 ;ㅁ;)
암튼 오늘의 결론. 하루종일 내 곁에는 미키밖에 없구나. 그나마 띡띡띡, 신호음을 내면서 꺼지기라도 하면 난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다. 그럴 땐 얼른 방으로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