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썸네일형 리스트형 시 ★★★★ 욱아, 너는 그러고도 잠을 자고 밥을 먹는구나. 어쩜 그 얼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밥을 삼킬 수가 있니. 니가 죽인 그 아이는 검고 어두운 강물 속에서 숨이 막혀갔는데.. 사망날짜, 시각, 장소. 이런 것들로 누군가의 죽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누가 죽은 아이의 넋을 위로해줄까.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 때 그 다리 위에 섰을 때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지 헤아려줄까. 그저 없었던 일처럼, 곧 잊혀질 사람으로 만드는 세상때문에 아네스는 죽어서도 외롭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슬피 눈물 흘린 사람 하나 있으니까.. 살아서 겪은 괴로움 모두 잊고, 거기서는 행복했으면. 아네스의 노래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 더보기 정민경 - 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 더보기 김수영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 더보기 김수영 -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더보기 박종형 - 축복하소서 모든 정직한 생산자들을 축복하시되 평생 천직으로 알고 농사 지어온 밭에서 햇감자를 수확하며 갈퀴손으로 웃음을 가린 채 그 소박한 행복마저 내보이기 수줍어하는 촌부에게 축복 하소서 장남이면서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자전거를 타고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나무탁자에 걸터앉아 살가운 평생 이웃들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그게 자신이 사는 행복이라고 웃으며 동리 품앗이가 줄어드는 게 걱정이라 하는 애옥한 삶에게 축복 하소서 여린 손으로 어린 동생의 밥상을 차려내고 빨래를 하며 연탄을 갈아도 눈물을 감추고 동생을 다독이며 어서어서 자라 간호사 되겠다고 꿈꾸는 소녀 가장을 축복 하소서 더보기 함께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이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더보기 김경주 - 비정성시 비정성시(非情聖市)* -그대들과 나란한 무덤일 수 없으므로 여기 내 죽음의 규범을 기록해 둔다 김경주 비 내리는 길 위에서 여자를 휘파람으로 불러본 적이 있는가 사람은 아무리 멋진 휘파람으로도 오지 않는 양이다 어머니를 불러서는 안 된다 대대장을 불러 세워선 안 된다 이것들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경위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음악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휘파람을 잘 분다 해가 뜨면 책을 덮고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구석으로 가서 나는 암소처럼 천천히 생각의 풀을 뜯을 것이다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그러나 사람에게 유배되면 쉽게 병든다 그리고 참 아프게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여기서 참으로 아프게.. 더보기 백석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소리내어 읽어보면 느낌이 참 좋다. 외워보려고 늘 시도하고 있는데 은근 헷갈린다; 더보기 한용운 -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 '님의 침묵' 中 군말, 만해 더보기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