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이종선, 갤리온.
역시. 좋은 책이라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은 책'으로 알려지는거였다. 뻔히 아는 사실인데도 이렇게 실망스러운 책을 만나면 새삼 놀라게 된다. 직접 구입한 것은 아니고 여차저차해서 받게 된 책인데,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를 안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제목에 약간은 기대를 했었다.
일단, 내용이 너무 두서가 없다. 각 장마다 그럴 듯한 제목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한두단락마다 소주제가 왔다갔다 하고, 잡다한 에피소드와 자기 느낌이 뒤섞여서 산만하다. 문장 호흡도 불안해서 도무지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어느 장에서는, 지하철에서 폐지를 모아서 어린 아들과 근근이 생활하는 아빠가, 이웃 아이들을 위해 돈가스를 만들어준다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읽다보니 분명 어디서 본 내용인데... KBS '현장르포 동행'을 통해 방영된 사연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한 단 한 마디 언급도 안 한건지. MBC스페셜을 통해 알려진 배우 김명민의 이야기 또한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마치 자기만 알고 있는 사실을 풀어내는 듯 써놓았다. 사소한 일이라고 볼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독자에 대한 기만이며 책을 쓰는 사람이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출처를 밝히더라도,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온 사색의 결과보다도 바깥 세계의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그치는 글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단지 유명인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목적 뿐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000박사에 따르면, 000에 의하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이 책 뿐 아니라 요즘 다른 책에서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자주 드는 생각이다. 유명 기업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들과의 사적인 일화를 풀어놓는 것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뭐랄까... 약간의 친분과시? 같은 느낌. 특히나 홈플러스 회장이 언급된 부분을 읽을 때는, 얼마전 SSM 관련해서 '동네슈퍼마켓은 장애인들이 만든 빵과 같다'라고 한 그의 말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른 이를 언급하면서 노골적으로 비난하더라, 그 내용 자체보다 남을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더 놀라웠다'... 라는 부분에서는 살짝 찌푸려졌다. 남들이 자기 앞에서 다른 이의 험담을 할 때 그저 끄덕끄덕 하며 듣고만 있었으면서 자신은 마치 그들보다 인격이 높은 양 생각하는 사람을 자주 봤다.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딴 데 가서 그들을 '뒷담화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는게 나았을 거다. 온화한 듯, 원만한 듯 스스로를 표현하지만 결국 저자 또한 책에서 지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평가한다. 결국 다 마찬가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의 가식을 느꼈고 이 책이 더욱 더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는, 이것을 객관적인 사건으로 보기보다 한 사람의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해야한다는 주장이었는데, 나는 저자의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이 오히려 불편했다. 노 대통령의 서거가 아무 사회적, 정치적 배경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일까. 오히려 그렇게 '순수하게 슬퍼하자'라는 주장은 사건의 핵심을 교묘하게 피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야 뭐 생각의 차이로 볼 수도 있는 문제여서 앞서 말한 다른 부분만큼 반감이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분과 관련된 정치적인 평가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른다'는 전제를 깔아둔 후 애도를 표한건, 혹시 있을 지 모를 정치적 성향에 대한 '오해'를 미리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 까먹을 뻔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분노한 부분은 '귀차니스트'에 대한 것이었다. 몇 년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귀차니즘'이라는 것에 대해 한 가지 사회현상쯤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척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귀차니스트를 위한 편리한 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해서 아낀 시간을..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퍼질러 앉아서 드라마나 보는 것으로 때우지 않기를 바란다는 부분이 있었다. 모든게 그렇게 귀찮으면 지인들과의 모임에 갈 필요도 없이 문자나 인터넷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던데, 귀차니스트라고 인간관계나 사랑, 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귀찮은 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타인이나 세상이 아닌 바로 그 자신에게서 나오며,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른 건 당연하다. 부지런하게 사는 것도 좋고 성공을 향해 달리는 것도 좋은데, 제발, 자기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잉여인생으로 치부하진 말아주길.
얼핏 보면 겸손하고 따뜻한 책으로 보이나... 그것을 읽는 나는 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까. 못된 사람, 자기 이익만 아는 사람을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 '이것은 내가 인격을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위안하는 사람들이 나는 오히려 무섭다. 차라리, 너 그렇게 살지마, 라고 한바탕 말싸움이라도 하는 사람이 더 좋은건 내가 꼬였기 때문일까? 저자의 경험과 실력은 상당할지 모르나...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이었다.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든 사람의 비밀'이라는 카피가 붙어있는데, 나는 내 방식대로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 것이다. (라고 처음에 썼지만 사실 세상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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