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읽은 책인데 갑자기 생각났다. 라디오에서 광고 엄청 때렸더랬지. (요즘도 할라나?) 크게 성공한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냥 소설 자체로만 보면 나한텐 그저그랬다. 특히나 츠지 히토나리가 쓴 건 그의 다른 소설들-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을 주세요, 편지-이 그렇듯 밍숭맹숭한 느낌. 하긴 한때는 츠지 히토나리의 글이 좋아서 일부러 사서 또 한번 읽기도 했지만; 어쨌든 연애소설은 어떨 땐 참 땡기긴 한데, 대체로 가뜩이나 청승맞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어서 달갑지 않다. 배드엔딩인 경우에는 마음이 너무 안 좋아져서 더더욱. 불평불만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꽤 있어서 따로 메모를 해뒀다. 그걸 포스팅 하고 싶어서 시작해놓고는 궁시렁거리기만 했네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착(or 집착)이 절절이 공감가서, 읽을 때면 어쩐지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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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고는 이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교토 사가노 대나무숲에서 나누었던 입맞춤을 잊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우리가 그의 작은 침대에서 껴안고 잠들었던 밤들을 잊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그러고는 벚꽃잎이 떨어지는 저녁 그 호숫가에서
어떤 여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천천히 걸어가겠지.
그리고 그 옛날 내게 했듯이 가끔 멈추어 서서
부드러운 눈길로 얼굴을 바라보며,
네 빛나는 눈이 참 예뻐. 하고 말하겠지.
어처구니없게도 그때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그때 나는 그의 곁에 있는 모든 여자를 질투했었다.
칸나라는 여자는 물론이고,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있던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공원을 걷다가 그가 일으켜 세워 주었던,
넘어진 열 살짜리 꼬마 아이까지.
그게 누구든 그가 나 이외의 모든 여자에게는
찡그린 표정만 보여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게 터무니 있든 없든 그랬다.
나는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가끔 그의 손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잠들고 싶었다.
어릴 때 피아노 뚜껑을 덮어 버려서
흉터가 남은 그의 손가락에 내 얼굴을 대고 싶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야. 집착일 뿐이라고."
나중에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친구 지희가 말했다.
...사랑을 하면 길거리를 걷다가 우두커니 서서,
앞서 걸어가는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건데.
그 사람 지금 여기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고.
나로 하여금 그렇게 걸어가다가 우두커니 서 있게 한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런데 지희야, 혹시 사람에겐 일생동안 쏟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난 그걸 그 사람한테 다 쏟아버린 것 같아...
...어렸을 때 읽은 동화에 그런 말이 나왔었다.
꿈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마음껏 이 세상을 떠돈다고.
만일 당신이 꿈속에서 누군가와 만났다면
그건 그 사람의 영혼도 밤새 당신을 만난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제 준고의 영혼도
나와 함께 이노카시라 공원 근처에 있었던 것일까.
...어떤 시인이었지, 순이를 사랑하던 그 날부터
거리에 수만 명의 순이가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썼던 사람이.
...사랑하면 말이야,
그 사람이 고통스럽기를 바라게 돼.
다른 걸로는 말고.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고통스럽기를..
내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조금만 더 고통스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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