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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1021


- 제목에 '1018'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날짜도 모르다니. 왜 하필 18일이지.

- 세탁물을 가지고 올라오다가 계단 난간에 세게 부딪혔다. 멍들 것 같네. 나는 아무래도, 나 외의 다른 것들과 어느 정도 떨어져서 지나가야 부딪히지 않을지 전혀 가늠을 하지 못 하는 것 같다. 늘 이렇다.

- 2학년 수업에 시험을 치러 들어갔다. 이 수업을 2학년 때 처음 들을 때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니, 이제야 좀 알겠다. 텔레토비처럼 반복 학습이 필요한건지 아니면 남들보다 2년이 늦은건지.
암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앉았는데, 깔깔대며 큰 소리로 떠드는 여자애들을 보자니, 짜증이 치민다. 너넨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그 입 좀 닥치고 조용히 앉아있을 순 없냐고 소리쳤다. (물론 속으로만)
고3 때 야자 끝나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학교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스쿨버스가 세워져 있는 교회 앞으로 걸어내려 가는데, 까르르 거리면서 뛰어다니는 1, 2학년들을 보며 마음 속에 잔뜩 칼날을 세우던 때가 생각난다. 시끄럽다. 짜증난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나는 이렇게 힘 빠져 죽겠는데. 하며, 마치, 너넨 아직 인생의 쓴 맛을 몰라,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맘껏 웃어라, 이런 태도로. 웃기셔 정말 ㅋㅋㅋ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신연령은 꼬꼬마초딩이다.
그리고 오늘 난 그 시끄러운 여자애들보다 시험을 못 봤음이 틀림없다; 그 애들은 노트 빽빽이 공부를 열심히도 해왔더라구. 아 북흐러워라. 그저 난 기분이 안 좋았을 뿐이고, 내 눈에 비친 다른 사람들이 전부 못마땅 했던거다. 못난이.

- 며칠 전엔 친구에게 별 일 아닌 걸로 삐지고, 그 애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나랑 같은 듯. 내가 먼저 연락해야하나. 모르겠다 사실 잘. 그 때 짜증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홱 삐질 일이었을까. 그래도 자기 스케줄에 맞춰 맘대로 약속시간을 오락가락 바꾸면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해줘도 좋았잖아.
오늘은 동생에게 별 일 아닌 일로 날카로운 말을 내뱉고. '투덜대지마. 이미 알고 있던 거잖아. 당연한거야. 니가 원하는 말만 듣고 싶거든 아예 대화를 하지마. 말 조심해.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지마.' 라고.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할 사람은 나다. 이건 뭐 말이 아니라 감정의 배설. 내가 하려던 말의 핵심만 쏙쏙 뽑아서 좀 더 좋은 말로 할 순 없었던 걸까. 그 편이 오히려 의도가 더 잘 전달될텐데.
말싸움 대회라도 하는 듯이, 매번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최대한 낼 수 있는 단어만 골라서 내뱉는 듯. 어제는, 위험하니 일찍 다니라고 하는 엄마에게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말라고 히스테리 환자처럼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고. 아. 내가 너무 싫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었다. 오늘 같이 기분 안 좋은 날 읽을 소설은 아니었다 ㅎㅎ 잘 안 읽히는 글이다. 문체가 건조하다 못해 바짝 말라터진 것 같다. 뭐 그래서 싫었단 뜻은 아니고; 대화체에는 따옴표도 없고, 등장인물의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가 다 묘사되어 있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의미를 놓치기가 쉽다. 워낙 눈으로 쉭쉭 재빨리 읽는 편이라 이런 소설 읽을 땐 참 힘들다. 천천히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짚으면서 읽어야 하는데. 집중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화장면을 읽을 때면 누가 어느 말을 한 건지 헷갈려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암튼. 조커도 생각나고 얼마전에 읽은 '모방범'도 생각나고. 다소 어렵긴 했지만, 잘 읽었다.  영화도 보고싶긴 하지만 간이 작아서 잘 못 볼듯 싶다.

- 또 물 먹었다. 어떡하지? 나짐 히크메트씨는,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을 때가 비로소 여행의 시작이라는데. ㅋ 아. 아. 정말 모르겠다.
인턴 정보를 좀 알아봤는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는 주5일, 아침 9시~저녁 6시까지 일 시키면서 월급은 30만원이다. 그것도 세전. 혹시 잘못 쓴건가 싶어서 인터넷에서 더 알아봤는데, 30만원이 맞는 듯. 한 달을 4주라고 쳤을 때, 대략 시급이 1333원이다. 굳.

- 고시원에 불 질러놓고 도망나오는 사람들을 칼로 찌른 놈이나.. 애들을 셋이나 유괴해서 죽여놓고는 사형선고에 불복해서 항소심을 청구한 놈이나.. 어떻게 하면 이런 인간들에게 제대로 죄값을 치루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답은, 없는 것 같다.
징역 10년이든, 20년이든, 살고 나오면 그만이다. 그 사람에게 살해당함으로써 남은 삶을 몽땅 도둑맞은 피해자와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건 벌도 아니다. 사형은...? 예전에는 사법살인이라느니 하는 말로 사형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는데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다.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좀 더 고민이 필요할 듯 싶은데 일단 드는 생각은, 그렇게 고통없이 간단히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그들에겐 오히려 자비로운 일이라는거다. 살아서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그로 인해 고통받아야 한다.
이러나 저러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살아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제일 슬프다.

- 어제, 아침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 여동생이 죽는 꿈을 꿨다. 꿈에서 그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는데,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파서 울음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1초, 또 1초, 매 순간 질식할 듯이 힘겹게 울음을 내뱉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꿈에서의 그 모습대로 울고 있었고 여전히 가슴과 목이 꽉 막힌 것처럼 아팠다. 꿈이었지만 그 슬픔이 너무 생생해서 한참을 그대로 누운채로 울었다. 옆에 놓여진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동생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꿈 생각이 자꾸 나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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