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4천원 인생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를 읽고 있다. 한겨레21에서 책 소개를 봤을 때 부터 아 이건 내 얘기야, 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차이점이라면 그들은 기자로서 단기간 체험해봤지만 나에게는 대학시절 생활비가 걸린 문제였다는 것. 기자가 잠시 겪어보며 써내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워킹푸어 문제를 개인적인 고통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환기시킨 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에게 그렇겠지만 특히 '4천원 인생'들에겐 시간이 돈이다. 몸이 아파 하루를 쉬면 며칠 식비가 고스란히 사라지게 된다.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미련하게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이모의 얘기가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할까. 어떤 정의감이나 동정심에서 오는 안타까움이 아닌, 내가 몸으로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그 언니, 이모들은 나처럼 일시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거의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 살아간다. 나에게는 출구가 있는 고통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도망갈 곳이 없다.
하루에 다섯 개의 결혼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화려하고 행복해보이는 결혼식 뒤에, 잠시 5분도 숨 돌릴 틈 없이 하루에 열네시간을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이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겐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자격은 없다. 팔다리가 너무 아파 잠시 쟁반을 내려놓고 싶어도 사방에서 나를 감시하는 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행동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지적이 날아온다. 소매 걷지 마라, 빈 쟁반은 들지 말고 옆구리에 껴라, 등 기대고 서지 말아라. 내리 몇 시간을 그렇게 일하다 보면 내 몸이 마치 기계처럼 느껴진다. 빈 접시를 보면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고, 팔이 쑤시고 몸이 무겁지만 열심히 빈 접시를 치우고 나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하게 된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4천원인생>에서도 나온 얘기인데, 일하다보면 음식이 음식같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주로 보는 것은 맛있게 생긴 4만원짜리 뷔페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 베어먹다 남은 고기, 식탁에 흘린 호박죽, 종이컵 속에 들어가 있는 초밥찌꺼기다. 아침 10시에 밥을 먹고 저녁 8시 반까지 열시간 반동안 밥을 못 먹었고 내내 바쁘게 일했지만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식욕이 뚝 떨어졌다. 일이 끝나고 밤 11시 반에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 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런 고급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받는 봉급으로는 그런 음식을 사먹기가 힘들다는 거다. 사먹는다 해도 그것은 노동의 강도를 생각해봤을 때 엄청난 사치가 된다. 꼬박 8시간동안 온몸이 아프도록 접시를 날라야 4만원을 손에 쥘 수 있으니. 이리 생각하다보니 자본주의의 폐해가 어쩌구 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ㅡ.,ㅡ (딴 소리지만 1시간에 5천원을 벌며 돈의 무서움을 깨닫다가도, 50만원짜리 MCM 가방을 갖고 싶어하는 내 이중성은 도대체..)
커피를 마시든 책을 사든, 나의 소비에는 늘 타인의 노동의 뒤따른다. 그렇게 24년을 살아왔으면서도 눈물나도록 일을 해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다니 씁쓸하다. 그렇다고 소비를 안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냥, 늘 생각하자. 모든 게 '당연한' 것은 아님을. 나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위해 누군가가 땀을 흘려 일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지. 그리고 적은 돈을 받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는 받으며 살 수 있길. 4천원 인생들의 삶이 활짝 필 날이 언젠가는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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