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길가에 버려진 낡은 매트리스를 보고 누군가가 생각났다. 몇 년에 한번 생각날까말까 한 그 이름이 왜 하필 그 때 떠올랐을까. 중학교 시절 꽤 친하게 지냈던 그 아이. 엄마가 안 계셔서 아빠, 오빠와 살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알려져있었다. 그 아이는 늘 오래된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다녔고 자주 씻지 않아 그런지 늘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매일 교복을 다려주고 도시락을 챙겨줄 엄마가 없었다. 반 아이들은 그것이 그 아이의 잘못인 것마냥 은근히 비웃고 놀림감으로 삼았다. 나 또한, '엄마'는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존재로 생각했고 그 아이는 어딘가 결핍되어있다는 인상이 무의식중에 있었다.
어떤 이유로 그 아이와 가까워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다 짝꿍이 되었고, 하교를 같이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크게 다퉈 한동안 말을 안 한적도 있었다. 몇 번인가 심한 말로 그 애를 울린 적도 있었다. 어느 날엔가 그 애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초등학교 뒷산을 한참 올라 작고 초라한 기와집에 도착했다. 그 아이는 한겨울에도 마당에서 찬물로 씻어야만 했다. 바깥 공기보다도 차가웠던 안방은,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티가 많이 났다. 해진 이불이 바닥에 깔려있었고, 여기저기 모래가 버스럭거렸다. 늘 엄마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된 방만 봐왔던 나는 어떤 표정으로 어색함을 감춰야할지 몰랐다. 나에게 이런 모습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는 그 아이가 놀라웠다 - 나는 우리집이 싫었다.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작았고, 그 때문에 안방에서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이 지겨웠다. 넓은 거실에 방이 세 개 딸린 친구집에 놀러가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집에 데려간 친구는 한 손으로 꼽고도 남았다 - 그 아이는 나와는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나에게 어느정도 마음을 열었던 것일까. 어쩐지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고, 얼마 뒤 그 애와 싸우고는 다른 아이들에게 내가 본 것을 거리낌없이 떠들었다. 그 애와의 관계는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언제, 왜인지도 모르게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다.
그 아이를 무신경하게 대했던 기억들과 함께, 고3 어버이날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저녁시간에 틈을 내어 사온 카네이션을 보고 반 친구가 "왜 하나밖에 안 샀어?"라고 물었을 때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날 밤 영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조용한 교무실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장례식 이후로 두 달..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아빠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밥을 먹을 때, 공부를 할 때도...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고통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꼭꼭 눌러만 오다가 아빠뻘의 그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은거다. 그 날 나는 얼마나 가슴 아프게 울었던가... 반 친구가 아무 악의없이 던진 그 말에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시린데, 중학교 시절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상처를 줬던걸까. 철이 없었다는 이유로는 용서받기 어려운 말들. 지금에 와서 미안하다고 느끼는 것조차 염치없는 일이다. 차라리 그 아이가 나를 까맣게 잊었으면 좋겠다는, 비겁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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