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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진

국립 현충원


면접 때문에 하루 휴가를 쓰고, 모처럼 오후 시간이 비어서
그동안 가고 싶었던 현충원에 다녀왔다.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동작역에서 현충원까지 가는 길이 좀 더 편해졌다.
3년전에 과제 때문에 갔을 때는 야외에서 한참 걸어야 됐는데,
이번에는 8번 출구에서 나가니 바로 정문이 있었다.
역 안에서 좀 많이 걸어야 되긴 하지만, 오늘 같이 햇볕이 뜨거웠던 날에 오고가기에 좋았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까지 보면서 본 많은 비석들. 저 멀리 보이는 하얀 것들이 모두 비석이다.
전쟁에 희생된 많은 분들과, 나라 일을 하다가 순직하신 분들이
평화로운 곳에서 편히들 쉬시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입구에서 10분 정도 걷다가 겨우 발견한 표지판.
전직 대통령 한 분 + 두 사람의 묘소가 있는데, 가이드의 말을 얼핏 들으니
2006년에 대통령의 묘소에 대한 법률적 제한이 생겼고 유족들의 뜻도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 묘소는 다른 두 곳에 비해 소박하고 검소하다고 한다.


입구 쪽. 저 너머에 묘소가 있다.
참배하고 돌아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꽃이 참 예쁘네~ 하고 가셨다.
오늘 날씨가 그래서인 것 같기도 하고.... 참 아늑하고 단정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내가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서 군부대에서 견학을 와서; 한 쪽에 비켜서서 가만히 기다렸다.
가이드분도 같이 오셔서 덕분에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건 좋았다.


추모비 뒤쪽에 쓰인 글.

나는 내 일생이 고난에 찬 일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불행한 일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일생이 참으로 값있는 일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많이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르게 살려고
국민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려고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
세계의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세계의 모든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 온 일생이었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추모비 앞쪽에는 고은 시인의 시, '당신은 우리입니다.'가 써있다.

당신은 우리입니다
- 고은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
어둠의 날들
몰아치는 눈보라 견디고 피어나는 의지입니다.
몇 번이나 죽음의 마루턱
몇 번이나 그 마루턱 넘어
다시 일어서는 목숨의 승리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우리입니다.

당신은 민족통일입니다.
미움의 세월
서로 겨눈 총부리 거두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바라마지 않는 것
마구 달려오는 하나의 산천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들의 평화입니다. 우리입니다.

당신은 이제 세계입니다.
외딴 섬 아기
자라나서 겨레의 지도자 겨레 밖의 교사입니다.
당신의 고난 당신의 오랜 꿈
지구의 방방곡곡 떠돌아
당신의 이름은 세계의 이름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들의 내일입니다. 우리입니다.

이제 가소서 길고 긴 서사시 두고 가소서.


국민의 이름을 빌려, 사명감 운운하며 권력욕을 애써 숨기는 정치인들을 많이 봐왔지만
정말 진실된 사람은, 그가 쓴 글 몇 구절만 봐도 그 진심에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것 같다.
말과 글에, 그동안 겪어 온 고난과 희생이 보이지 않게 묻어있기 때문일까?
책을 읽고 있을 때도 그랬고, 이렇게 묘소에나마 뵈러 가니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하나로 그 모든 탄압, 회유,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이겨내며
평생을 헌신해오신 그 모습에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존경한다.


돌아가는 길.
살아서는 힘든 일, 아픈 일 많이 겪으셨던 분들이 계신 곳인데
너무나 평화로운 느낌이 나서 다행스럽다고 해야하나 슬프다고 해야하나, 암튼 기분이 이상했다.


넓은 들판 저 멀리, 아기가 뛰어놀고 엄마와 아빠가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모습이 흐뭇해서 줌을 써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 사진도 올리려다가 실례인 것 같아서 그냥 나만 보고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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