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새벽 4~5시까지 쓰잘데기 없는 일로 하루를 채우고 나면 잠들기 싫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매일이 그렇다. 허리와 어깨의 뻐근함이 한계치에 이르러 할 수 없이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엎드려서 빨간머리 앤 다이어리를 펼친다. 어제도 오늘도 별다른 사건은 없었지만 매일매일 기록할 것은 생겨난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며칠전부터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허비하는 것이 취미생활인지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상상조차 해본적 없는 '서른살 무렵'이 뭔가 소름끼치게 와닿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한 살 더 먹었다고 해서 나도 이제 늙었구나, 이런 말도 안되는 한탄을 하는건 아니고. 나도 정말 서른살이 되고 마흔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듯이 새로운 느낌이었다.
여자 서른살이면 보통은 결혼을 했거나 곧 결혼을 할 예정일텐데,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벌써 애가 둘이거나 혹은 정반대로 결혼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상황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오년 전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오년 후 또한 그러리란 법은 없다. 이왕이면 지금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그 때도 여전히 내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욕심내진 않는다. 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이미 다섯살에 깨달았다 ㅋ ..는 헛소리를 해본다, 살짝 부끄러워서 ㅎㅎ
그때쯤이면 직장생활 한지 5-6년쯤에 접어들었겠지. 돈은 많이 모았을까? 이렇게 말하니 꼭 남 이야기 같다. 어제 계산해봤는데 내가 갚아야 할 대출금이 대략 6개월치 월급쯤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고, 어떻게 생각하면 몇십년 남은 인생인데 6개월쯤 늦게 가도 큰일은 안 나겠지, 싶기도 하다. 어차피 남들과 출발선부터 다르다고 생각했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직 세상에 많으니 괜찮아.
드라마 '연애결혼'에서 나온 이야기. 잘 안 풀리는 문제는 답에서부터 시작해 거꾸로 대입해가면서 풀어간다. 그럼 내가 바라는 나의 서른살은...? 지금도 충분히 속물적인 면이 있고 몇 년 후엔 훨씬 더 속물이 되어있을 듯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속물적인 모습이었으면 하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진심이나 열정 등의 가치를 풋내난다며 비웃기 보다는 예전에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길. 몇 살 더 먹었다고 해서 지금 내 나이 무렵의 사람들을 우습게 보지 않길. 살다보면 어쩔 수 없어, 라는 쉬운 말로 합리화 하기보다는 진정으로 한 번 더 고민하고 곱씹어 보는 사람이 되어 있길.
내가 바라는 나의 서른살을 위해선, 아직 오지 않은 날만 바라보고 공허한 꿈을 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그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겠지. 그리고 나의 물질적, 정신적 '스펙'을 높이는거다. '스펙'이란 단어가 꼭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듯해서 찝찝하다면 '가치' 정도의 그럴 듯한 단어 정도. (하지만 슬프게도 이미 '스펙'이란 단어가 사람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말이 되버린 세상이다.) 토익 고득점이라든가 자격증이라든가, 남들 다 하는 시시한(?) 것부터 시작해서 하루하루 머리와 가슴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다 보면 곧 괜찮은 서른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몰라. 열심히 공부하고, 잘 놀고, 잘 쉬어야지.
아. 휘핑크림을 이따만큼 얹은 스벅 카라멜 마끼아또랑 촉촉촉촉한 치즈케익을 먹고 싶다. 비록 스벅 없는 컨츄리에 몸 담은 24세 백조지만, 그 맛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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