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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0605

 봉사활동이라는거.. 아무리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때 꽃동네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이상하고 무섭다면서 피하던 친구들이 나보다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남들 시선도 있고 해서 애써 오픈마인드를 가진 척, 우리랑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인데 뭘 그래, 라는 식으로 가식을 떨었던 내가 부끄럽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장애인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속으론 흠칫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악수를 나눴다. 기저귀에 용변을 본 할머니를 보며 거북해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고, 음식물을 질질 흘리는 여자아이의 입가를 아무렇지않게 닦아주면서도 속으로는 어서 손을 씻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말을 거는 행동이 과연 그 사람을 위한 거였는지, 나를 위한 거였는지, 아니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였는지... 최근 몇 년간 이렇게도 내가 가증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짧은 만남뒤에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한 분이 서럽게 눈물을 흘리셨다. 그 모습을 보고 또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내가 너무 싫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울컥해서 슬퍼할 자격이 나한텐 없지 않나..

 오며가며 야유회 분위기로 주변 사람들과 떠들썩 하게 놀고, 고작 세시간동안 도움은 커녕 폐만 끼치면서 생색 내고 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정말, 그 분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나 봉사활동 했다'라는 위안과 뿌듯함을 느끼기 위한 것이었을 뿐.  얼마 전 본 휴먼다큐 '사랑'에서 엄지공주 윤선아씨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난 누가 날 보고 위안을 느끼는게 싫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또, 중고등학교 때 봉사 수련을 가기 전에 선생님들이 이렇게들 말하셨다. 가서 많이 보고 느끼고, 너희가 얼마나 행복한지 배우고 오라고. 갔다오면 너희는 정말 '사람'이 되있을거라고. 제발 봉사활동을 애들 인성수련의 용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느끼는 것. 몸이 아픈 사람을 보고 나서는 우린 몸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거야, 라고 말하는 것... 그게 상대방에게는 얼마나 무례한 생각인지. 나 또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괴롭다.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너무 혼란스럽다. 죄책감과 자괴감, 회의감 같은것들이 마구 섞여있다..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은 봉사활동 같은 것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아직 너무 어리고 거짓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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