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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7월의 첫째 날


1.

7월을 맞아 싸이 BGM을 '7월의 이파네마 소녀'로 바꿨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동으로
작년 여름,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다음 날
역삼역 화장실에서 내 폰이 울리던 게 떠오른다.
이 맘때쯤에 벨소리로 지정해두긴 했지만 늘 진동으로 해두는 탓에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듯.
그리고 폰 액정에 뜨던 그 이름.

바로 전 날,
나는 거짓말로 벌어먹던, G랄같은 그 알바를 그만뒀고
그 분은 고민고민 끝에 첫 직장을 6개월만에 관뒀더랬지.
마침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라,
각자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볼 일을 본 후 만나기로 했었다.

저녁은 미스터 피자. 그리고 소주 한 잔.
차이나풍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이 있는 그 곳에서
나는 새우 껍데기를 열심히 깠고,
선배와 자주 말다툼을 한다는 내 말에
맞은 편에 앉은 그 분은 너도 참 기가 세구나, 라고 얘기를 했고.
Fly to the sky 새 앨범 이야기, 나는 캐스커를 좋아하고 허밍 어반 스테레오는 싫어한다는 이야기.
그 분은,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차차 자연스레 사귀게 된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

지하철 시간 때문에 11시쯤, 일어났던 것 같은데 아쉬웠던 건 나뿐이었을까. 그랬겠지.
아무튼 그 날의 괜찮았던 느낌을 가진 채로,
내가 너무 멀리 돌아온 탓에
마냥 웃을 수 있는 추억만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아련하다. 좋아. 조금 어색하고, 조금 편했던 것 같아.


2.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무얼 했냐고 묻는다면 대략 세 가지.
자고 자고 또 잤고, 님 생각을 했고, '빨간머리 앤'을 봤다.
옛날에 TV에서 해주던 그 애니메이션.
님께서 유럽으로 날르기(시적허용, 이런다) 전에 1화부터 50화까지 쭉 구해주신 덕분에,
오늘은 대략 16화? 정도까지 본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릴 때는 마냥 앤 편이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좀 더 마릴라의 시점에서 보게 되는걸까.
내 기억엔 마릴라는 엄하고 융통성 없는 잔소리쟁이였는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더라.
또 길버트는 무조건 재수없는 장난꾸러기였는데 이제보니 앤이 오바한 거였잖아?

다이애나가 포도주를 딸기주스로 잘못 알고 세 컵이나 마신 뒤에 취해서 헤롱헤롱, 웃었다가 화냈다가,
하는 장면에서는 소리내서 웃었다. '다이애나도 취하면 개 되는군' 이런 과장된 생각을 하면서.

여튼 다시 보니 정말 재밌구나. 이번 주에 도서관에 가면 원작소설을 빌려와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3.

그 놈의 '불법, 폭력 시위' 타령.
말이란 참 무섭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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