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당선자 징역형…도지사 직무 정지
항소심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대법원서 확정되면 도지사직 잃어
»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1억여원을 제공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고법 6부(부장판사 이태종)는 11일 정치자금법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에게 1심과 같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00여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이 당선자는 취임하자마자 직무가 정지될 위기에 처했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11조 1항 3호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 부단체장이 권한을 대행하도록 돼 있다.
또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돼 도지사직을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강원도지사는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선출해야한다.
이 의원은 2004∼2008년 수차례에 걸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미화(달러)를 포함해 1억8000만원을,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 기소된 뒤 수감 5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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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당선자 징역형...도지사 직무정지 불가피
[앵커멘트]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가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다음달 1일 취임과 함께 직무가 정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신호 기자!
도지사 취임식을 20일 정도 앞두고 있는데 결국 항소심에서도 직무 정지에 해당하는 형량이 선고됐군요?
[리포트]
이광재 당선자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으면서 정상적으로 도지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형이 확정될 때까지 직무를 정지하도록 돼있습니다.
집행유예는 금고형 이상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당선자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직무가 정지됩니다.
재판부는 이광재 당선자가 돈을 받고 일을 부정하게 한 사실은 없지만 당시 권한이 많은 상황에서 조심했어야 했고 따라서 비난 가능성도 높다며 징역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당선자 측은 지난 8일 "불법 자금을 건넸다고 주장한 박연차 전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고 싶다"며 법원에 변론 재개 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선고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이광재 당선자는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도지사 직을 아예 상실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당선자가 직무를 재개하고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진행될 대법원 선고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YTN 신호[sino@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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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돈 안 받았죠?" "예" 이광재, 박연차 직접 '심문'
이광재의원 정치자금 수수 혐의 공판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홍승면) 심리로 열린 이광재 민주당 의원에 대한 공판에서 피고인인 이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직접 '심문'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이날 박 전 회장에 대한 증인 심문을 자청, 박 전 회장이 예전에 수 차례 자신에게 돈을 주려 했으나 그때마다 거절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먼저 "2002년 대선 때 쓰라고 주신 돈 거절한 적 있죠"라고 물었고, 박 전 회장은 "예"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이어 2003년, 2004년 등 수 차례 박 전 회장이 돈을 주려 했으나 본인이 거절했던 예를 일일이 들어가며 "제가 결국 안 받았죠?"라는 질문을 이어갔고, 박 전 회장으로부터 모두 "예"라는 대답을 얻어냈다.
이 의원은 "하얏트호텔 지하에서 만났을 때 발렌타인 30년산 시키셔서 제가 부담된다고 가격이 싼 술을 시키지 않았느냐"며 박 회장의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 의원은 심문 말미에 검찰에서 자신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박 전 회장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며 "정말 저한테 이러시면 죄짓는 겁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회장은 "제가 깨끗한 정치하려는 사람에게 어떻게 됐건 검찰에서 돈을 줬다고 진술한 점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앞서 박 전 회장은 이 의원에 대한 공소사실(미화 12만달러 및 한화 2,000만원 수수)과 관련해서는 이 의원에게 여러 차례 정치자금을 건넸다고 인정했다.
그는 "2006년 4월 서울 한 호텔 식당에서 5만달러를 건넸으나 이 의원이 거절해 옷장 안에 두고 먼저 나왔다"고 진술했다. 또 "베트남에서 이 의원을 만났을 때는 식당에서 이 의원에게 가까운 쪽 테이블에 5만달러가 든 쇼핑백을 두고 왔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판 내내 "박 전 회장이 이 의원의 거절에도 수 차례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는 점을 부각했지만, 변호인은 "박 전 회장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돈이 최종적으로 전달됐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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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의원 최후진술서 (작년 자료)
1.
저는 우리나라가 품격 있는 나라, 좋은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 변호인 중에는 저와 생면부지인 분이 한 분계십니다. 저기 계신 이광철 변호사입니다.
이광철 변호사는 변론활동을 하러 구치소에 면회를 다니던 중, “이광재를 불면 봐준다고 한다. 난리다”라는 이야기를 재소자로부터 듣고,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서 ‘이건 아니다’ 싶어 저희에게 “조심하라”고 얘기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 이 법정에서 저를 변론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참으로 참담한 현실입니다. 이것 말고도 제가 들은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만 제가 사랑하는 이 나라의 품위를 위해서 더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생기는 이 정치보복의 희생자는 제가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성한 법정의 명령으로 이 비극적 굴레를 끊어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2.
저는 꿈이 있었기에 노무현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금품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대처했습니다.
저는 강원도 산골 출신입니다. 어릴 적 저희 집에는 TV가 없었습니다. TV를 보려면 동네 부잣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어느 날 탤런트 태현실씨가 주인공인 <여로>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누나와 함께 그 집으로 갔다가 매몰차게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은 제 마음에 깊이 남아 가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노력하면 극복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가난을 내 힘으로 극복하고, 다른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청계천 노동자들을 위해 야학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도 갔습니다.
제 나이 스무 세살에, 막 국회의원에 당선된 마흔 두 살의 노무현 의원을 만났습니다.
199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날 밤, 저는 호남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분들은 울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나라에 지역감정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나 같은 지역감정 피해자들이 애를 더 낳는 길밖에 없다.” 그 일을 겪은 후 저는 노무현이란 정치인의 철학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많은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분의 곁에 있었습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그 분의 철학을 살리기 위해 일했습니다. 마침내 그 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저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되었습니다. 고시출신 중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은 부처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들은 이야기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회사의 존폐를 가지고 압박을 하면 99%는 없는 이야기라도 만들어 내어 회사를 살린다. 꿈이 있다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라.” “정권 후를 염두에 두고 더 조심해라. 당신도 어쩔 수 없이 타깃이 될 것이다.”
저는 이 분들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조심 또 조심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특별검사를 임명한 여섯 번의 수사 중에 무려 두 번이 저를 수사대상으로 삼았고 그 수사비에 무려 30억 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돈 문제가 없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박연차 회장이 주는 돈을 저는 단연코 거절했습니다. 2002년, 2003년, 그리고 2004년은 의원회관에서, 2006년은 부산 롯데,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저는, 면전에서 직접 거절했습니다.
거절할 때 마다 언제나 밀고 당기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2006년에는 박 회장께서 “진짜 서운하다. 나를 못 믿느냐? 못 믿기 때문이냐?”라고 까지 하여, 미안한 감정이 들어 제가 직접 음식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거절하였습니다.
술을 먹어도, 박 회장 등 금품이 오고갈 가능성이 있는 분들을 만날 때는 거의 술을 안했습니다. 흐트러진 상태에서 형님 동생하며 실수할 상황을 방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박 회장께서는 지금도 제가 술을 못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6년 동안 골프도 치지 않았습니다. 만나자는 사람이 누구를 데리고 올 지도 모르고 제 골프 값만 내고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골프 값 몇 십 만원이라도 신세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될 때는 고향 강원도, 하나된 대한민국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싶었습니다. 2018년 2월 남북이 동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날,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전기를 만들고, 강원도가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금품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돈 안드는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역구를 돌 때는 마을회관에서도 숙박을 해결했습니다. 조직으로 지역구를 관리하면 돈이 들기 때문에 저는 발로 뛰고 땀 흘려 일했습니다. 저는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비판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인은 무조건 돈을 받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이 유죄가 입증될까지는 무죄라면, 정치인은 무죄가 입증되어도 유죄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정치인 중에도, 법조인과 관료들처럼 꿈을 지키기 위하여,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한 인간으로서, 한 정치인으로서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 너는 언론에서 주목할 정도의 전정권 실세였다. 2, 너는 정치인이다. 3, 고로 너는 돈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단순 삼단논법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합니다.
법은 한 사람의 선량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 법정의 신성함과 현명함으로 이러한 단순 삼단논법의 사슬 또한 끊어주시기를 호소합니다.
3.
저는 약속한 대로 국회의원직을 사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봉하마을의 자원봉사자로 갈 것입니다. 봉하마을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도 전 재판과정에 성실하게 임해나가겠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신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공적인 생활, 꿈을 다 포기해버리려 했습니다. 재판에만 집중해서 무죄를 입증 받고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쁜 농번기에, 단 한 달 만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를 위해서 해주신 서명을 보았습니다. 면회를 올 때 나물이나 음식을 가져오는 지역구의 서민들을 보면서 '정치가 황량한 것만은 아니구나.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서민들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부엉이 바위에서 돌아가신 후에는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서 강력히 싸워나가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어찌할까를 두고 긴 시간 고민이 많았습니다. 솔직히 국회의원직에 대한 미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봉하마을 자원봉사자가 되려고 합니다.
만 21년간 모셔왔던 노무현 대통령께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셨습니다. 그 분이 절대 고독 속에 계실 때 옆에서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안장식에 흙 한 줌 덮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살아남은 자인 제 마음은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작지만 초라하지는 않은 묘역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못다하신 사업들을 돕고 싶습니다. 아니 그냥 봉하마을에 있음으로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늦었지만 그 분 곁에 있고 싶습니다.
애끓는 마음을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두 가지 마음도 가지지 못하고, 두 가지 일을 함께 해 나가지도 못합니다. 시묘 살이를 하는 마음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용서가 분노를 이기고, 통합이 갈등을 이기고 사랑이 폭력을 이기고 진실이 편견을 이기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