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8 싸* 후기
아.
지원서 쓸 때 시간에 쫓겨서 성적을 2학년 1학기까지밖에 못 입력한 채로 내서
아예 '미제출'로 노트에 표시해뒀었는데 서류 합격이라고 떠서 완깜놀.
아예 준비를 안 하고 있었던데다가 시험까지 남은 3일동안도 공부를 전혀 안 해서
완전 '무'의 상태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여섯시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일곱시에 나옴.
전철타고 가면서 노래 듣다가 넬의 'Good night'이 나오길래 '아씨 노래 진짜 좋다 ㅠㅠ' 이러고 있었는데
문득 내 오른쪽에 앉은 여자를 보니 뭔가 두꺼운 책을 보고 있고
내 왼쪽 여자도, 내 맞은 편에 앉은 여자 두 명도 책을 보고 있는거다;
딱 보니 다 시험보러 가는 인간들... ;;;;
갑자기 심장이 마주 조여들더라;;; 난 지금 뭐하고 있지? 헐. 하면서;
선릉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려고 기다리는데 주변에 전부 시험 보러 가는 듯한 분위기; 으악. 갑자기 긴장.
1교시 언어력은 다들 그랬겠지만 쉽게 풀었는데 2교시 수리력은 예상대로 ㅇㅇ 수학 ㅄ답게 패스패스패스.
표준편차 구하는 법도, 순열과 조합의 차이도 다 까먹었다능. 공부를 해갔으면 될 일이지만. 으앆.
하지만 추리력은 뭐... 안드로메다급 난이도 ㅇㅇ
늘 도형문제 나오면 미치고 팔짝 뛰는데 그 뒤에 말장난 해놓은 추리문제는 정말 답이 없음.
상식 문제는 다른 건 웬만큼 풀었는데 경제 관련 문제는 ㅈㅈ.
평소에 내가 남들보다 크게 머리가 나쁘다거나 무식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는데
이게 머리 나쁘고 무식한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ㅠㅠ 흑...
하긴 평소에 신문 볼 때도 늘 경제면은 패스하고 가끔 볼 때면 갑자기 눈 먼 듯한 기분이었으니
이제껏 나의 무식을 자각 못 했다는게 더 신기하다.
직무적성검사2에서는 상황판단&직무성격 검사를 했는데 뭐 딱히 정답은 없는 문제들.
회사에서 업무처리 중에 어떠어떠한 트러블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뭐 이런 문제 던져놓고
다섯 가지 중에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이건 뭐 큰 문제없었는데... 마지막 직무성격 검사... 300문제 ㄷㄷㄷ
평소 많이 해본 성격유형검사랑 비슷한 문제들이었다. 성격, 인성, 도덕성,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들인데
이걸 그냥 솔직히 답을 써야 하나 아니면 채점 기준에서 봤을 때 바람직한 답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하긴 거짓으로 답했으면, 비슷하거나 똑같은 문제가 자꾸 반복되기 때문에 들통났을테지만.
앞에 검사1도 완전 망했겠다, 그냥 내키는 대로 쓰기로 했다. 머리 굴려서 답하기도 귀찮고;;
싸이코를 가려내는 문항들도 있었던 듯 ㄷㄷ
불에 매혹된다, 가끔씩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누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등.
저런 문제들에서 Yes하진 않았지만... 뭐더라?
가끔씩 욕을 퍼붓고 싶어진다, 이유없이 불안할 때가 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어렵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쉽지 않다, 등등. 이런 문제들에서 전부 Yes.
내꺼 종합해보면, 자신감 부족에 사회성 결여, 우울증을 가진 인간으로 나올 듯 ㅇㅇ;
오너경영이나 노조, 기업의 사회책임과 관련된 문항도 있었는데 그냥 자포자기하고 되는대로 고름...
검사1 망한데다 기분도 안 좋아서 좀 오기를 부린 듯 ㅎㅎㅎ
가고 싶었던 회사도 아닌데 지원할 때 계열사 중 얼떨결에 고른 곳이라; (어차피 가지도 못하지만;)
SS은 사회적 책임과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라든가. 'SS맨'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준다면 회사를 옮길 것이다, 뭐 이런 문제들.... 당연히 옮긴다고 답함 ㅋㅋㅋㅋㅋ
틀렸네여... 나라도 안 뽑아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일레븐 퍼센트 새로 나온 가방, 인터넷으로 봤을 때 이쁜 것 같긴 했는데 직접 봐야 알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아까 보니 내 앞에서 시험 보는 여자가 그 가방을 갖고 있는거다!!!! 이쁘더라 ㅎㅎ 살까.....
시험 보러가서 이딴 거나 신경쓰고..............................................
참 그리고 우리 고사실의 35명 중에 내가 젤 어렸다;
안 그래도 주변에서,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니냐고 그러기도 하고, 스스로도 너무 준비가 안 되어서 불안한데...
그걸 보니 더 불안.... 뭣도 모르고 그냥 뛰어드는 것 같아서........
사실 남보다 나이가 어린 게 문제라기 보단, 준비가 전혀 안 된게 더 큰 이유지...
이 나이라도 충분히 경쟁력 갖출 수 있는건데 말야.
아, 불안하다. 심란하구나...
평소에도 성격이 비뚤어진 편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저 300문제에 답하다보니
나란 인간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과연 기업이라는 큰 조직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설령 검사1을 잘 본다고 해도 검사2에서 볼 수 있듯 뭔가 난 기업들에서 원하는 인간형이 아닌 것 같다.
요새 다들 리더십, 리더십, 하는데 리더십은 커녕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뭔가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혼자 조용한데서 일하는 게 좋은데... 근데 어쨌든 취직하려고 하면 저런 걸 피할 수는 없잖아.
감정기복도 심하고, 자신감도 없고, 현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똥고집만 피우고.
아무래도 사회부적응자인가 싶다.
시험 한 번 보고 자신감이 너무 떨어졌구나.
심지어, 무심코 본 벽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나보이니.
그냥 힘내서 열심히 하자, 라고 하기엔 이미 밑바닥부터 회의가 들어서 ...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그냥.